[정의길의 세계만사]
이스라엘-아랍에미리미트 관계 정상화 의미
이스라엘-아랍에미리미트 관계 정상화 의미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연합의 관계 정상화에 합의에 분노한 팔레스타인 시민들이 14일(현지시각) 요르단강 서안 야타에서 아랍에미리트연합의 국기를 태우며 시위를 하고 있다. 야타/EPA 연합뉴스
중동의 세력 재편이 시작됐다 두 나라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중재로 발표한 관계 정상화 합의는 크게 세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첫째, 이스라엘이 중동 국가와 세번째로 수교하게 됐다. 이스라엘은 1979년 평화협정을 맺은 이집트를 시작으로 중동 국가와 처음으로 관계 정상화를 이룬 뒤 1994년에 요르단과도 수교했다. 둘째, 이스라엘에게 아랍에미리트연합은 수교를 하는 3번째 중동 국가지만, 그 의미는 이집트와의 평화협정에 준한다. 이스라엘과 수니파 아랍국가, 특히 걸프 지역의 수니파 보수왕정 사이의 관계 정상화의 시작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랍에미리트연합과의 관계 정상화를 계기로 중동에서 이스라엘의 지위와 영향력은 주변국들도 동의하는 지역 패권국 수준으로 격상될 수 있다. 셋째, 두 나라 관계 정상화로 이스라엘의 서안지구 병합 계획이 중단 혹은 연기된다. 두 나라 수교의 조건으로 이스라엘 정착촌이 있는 서안 지구에 대한 병합을 중단키로 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중동평화안’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각) 백악관 집무실에서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연합이 관계 정상화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워싱턴/AP 연합뉴스
‘이라크전’ 이후 접촉 잦아진 이스라엘-사우디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연합 관계 정상화의 공통분모는 ‘반이란’이다. 2003년 이라크 전쟁 이후 이란은 이스라엘과 사우디 모두에게 주적으로 떠올랐다. 걸프 지역에서 이란을 견제하던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이 이라크 전쟁으로 몰락하자, 이란의 영향력이 걸프 지역을 넘어 중동 전역으로 확장됐기 때문이다. 특히 이란은 강경한 반이스라엘 노선을 취하는데다, 이란의 이슬람공화국과 시아파 정체성은 사우디로 대표되는 수니파 왕정에게 최대 위협이었다. 이란은 중동에서 시아파 연대를 구축해, 이라크 전쟁과 시리아 내전을 거치며 그 영향력을 더욱 확장해왔다. 이라크 전쟁 이후 이라크에선 시아파 정부가 탄생했다. 시리아 내전 당시, 이란은 바샤르 아사드 정부를 후원해 사우디 등이 지원한 반군세력들을 패퇴시켰다. 이란-시리아의 아사드 정부-이라크의 시아파 정부-레바논의 헤즈볼라-팔레스타인의 하마스로 이어지는 이란 주도의 시아파 연대 세력의 영향력이 시리아 내전 이후 급속히 신장됐다. 이란의 영향력 확대는 수니파 종주국을 자처하는 사우디가 반이란 연대를 꾸리게 하는 계기가 됐다. 시리아 내전을 거치면서 사우디 등 걸프지역 수니파 보수왕정과 이스라엘의 사이의 접근도 이뤄졌다. 사우디 등 걸프 지역의 수니파 보수왕정 국가들은 4차례의 중동전쟁에서 적국이던 이스라엘보다는 이란이 더 큰 위협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역시 최대 위협인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걸프 지역 국가들을 향한 접근을 본격화했다. 이스라엘의 정보기관인 모사드가 나섰다. 모사드의 수장 요시 코헨은 최근 몇 년 동안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연합·이집트 등 아랍 국가들의 정보기관장들과 수시로 만나 관계 정상화의 초석을 다져왔다. 특히 이란의 핵 개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가 주도한 이란 핵협정(JCPOA: 포괄적 공동행동계획) 이후 사우디 등은 이스라엘 쪽에 한발 더 다가가게 됐다. 코헨은 2018년 오만의 국왕 술탄 카부스 빈 사이드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국빈방문으로 초대토록 하는 공작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두 나라가 외교관계를 맺고 있지 않는데도 정상의 국빈방문이 이뤄진 것이다. 이스라엘과 사우디 등 걸프 지역 국가들은 민간 차원 교류도 활성화시켰다.
팔레스타인에 전달할 코로나19 방역물품을 실은 아랍에미리트(UAE) 에티하드 항공의 화물기가 지난 6월19일(현지시각) 이스라엘 텔아비브 인근 벤구리온국제공항 도착해 있다. 공식적인 외교관계를 맺지 않은 두 나라 간 최초의 직항편이다. 로드/로이터 연합뉴스
트럼프의 ‘중동평화안’이 추동한 관계 변화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취임 이후 추진해온 중동평화안도 두 나라의 관계 정상화를 추동했다. 트럼프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보좌관이 앞장서 추진해온 중동평화안은 예루살렘 및 서안지구의 정착촌에 대한 이스라엘의 주권 선포를 허용하되, 나머지 70% 지역에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수립하도록 추진하는 것을 뼈대로 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에 따라 서안지구 정착촌 병합을 천명하고, 이를 밀어붙이려고 해왔다. 하지만 아랍 국가들은 이스라엘의 서안지구 병합은 자신들과 이스라엘의 관계 정상화를 무위로 돌릴 것이라며 반대해왔다. 돌려 말해, 이스라엘이 서안지구를 병합하지 않으면, 관계 정상화가 급진전될 것이란 뜻을 시사해온 것이다. 유세프 알옥타이바 미국 주재 아랍에미리트연합 대사는 지난 6월 이스라엘 일간지에 ‘병합이나 관계 정상화냐’라는 제하의 기고를 통해 이스라엘이 서안지구 병합을 중단하면 아랍에미리트연합과의 관계 정상화가 이뤄질 것임을 시사했다. 그는 “병합은 명확하고, 즉각적으로 아랍 세계 및 아랍에미리트연합과의 개선된 안보, 경제 및 문화 관계에 대한 열망을 뒤로 돌릴 것”이라며 ‘병합이냐 관계 정상화냐,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고 압박했다. 아랍에미리트연합 쪽의 관계 정상화 의지를 확인한 미국 쪽은 쿠슈너를 내세워 네타냐후를 설득해 타협을 이끌어냈다. 부패 혐의로 기소된 네타냐후도 재판에서 살아남으려면 교착상태에 빠진 연정을 성공시켜 정권을 유지해야 한다. 그는 아랍에미리트연합과의 협정이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봤다. 13일에 두 나라의 관계 정상화 발표 직후 이뤄진 방송 연설에서 네타냐후는 “연정 대상과의 협상에서 큰 진전을 봤다”고 발표했다. 아랍에미리트연합에 이어 오만과 바레인이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에 나설 수 있다. 사우디가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에 나설 조건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사우디의 실질적 통치자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는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를 이루고 싶어하나, 국내의 보수적인 이슬람 세력의 반대로 주저하고 있다. 이번 합의를 통해, 트럼프 행정부는 중동평화안을 관철시킬 입지를 마련했다. 최대 난관이던 이스라엘의 서안지구 병합 문제가 해소됨으로써, 중동 국가들의 적극적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게 됐다. 팔레스타인에게도 동참에 대한 압박을 높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팔레스타인 쪽에선 이번 합의를 두고 ‘등 뒤에 꽂힌 배신의 칼’이라는 비난이 나왔다. 팔레스타인은 이번 합의의 최대 피해자가 됐다. 걸프 지역 국가들이 이스라엘과 수교함으로써 고립이 더욱 심화되고, 미국과 이스라엘로의 양보하라는 압력이 거세질 것이 분명하다. 물론, 두 나라가 이번 합의를 과장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팔레스타인의 언론인 다우드 쿠탑은 <뉴욕 타임스> 인터뷰에서 “아랍에미리트연합은 이미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를 했고, 병합 계획도 이미 연기됐다”며 “우리가 당분간 듣게 될 야단법석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태에서 승자는 없다”고 말했다. 이미 정해진 대로 갈 길을 가는 것일 뿐, 달라진 것이 없다는 말이다. 게다가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에 접근하는 아랍 국가들로부터 버림받는 게 될 수도 있지만, 그럴수록 이스라엘-아랍 관계에서 자신들이 차지하는 몫도 커질 수 있다. 이란에게도 이스라엘-아랍에미리트연합의 관계 정상화는 ‘진행되던 사안이 공식화됐다’는 의미를 지닌다. 자신에 맞서는 이스라엘-사우디 연합이 가동되는 첫 단추가 끼워진 것이다. 이란은 레바논, 시리아, 카타르, 예멘 등지에서 사우디를 포위하고 위협하며 맞설 것으로 보인다. 미국도 이런 이란을 지금처럼 압박과 봉쇄만으로 다룰 수 없음을 알고 있다. 이번 합의를 중재한 트럼프는 자신이 재선되면 몇달 만에 이란과의 합의를 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는 당선되면 이란 핵협정을 부활시킬 것이라고 공약했다. 결국, 이란 대 이스라엘-사우디 연합의 대결 구도가 장기적으로 중동의 지정학적 지형을 새롭게 형성할 것으로 보인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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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15, 2020 at 07:59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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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대 이스라엘-사우디 연합의 대결이 시작됐다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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