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전 주러시아 공사
지난 22일 부산에서 서훈 국가안보실장이 양제츠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과 회담했는데 회담 내용에 대해 상세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회담 후 양측의 발표와 중국 언론 보도로써 회담 내용을 미루어 짐작해 보고 한-중 관계의 현주소를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시진핑 주석의 방한에 대해 청와대 브리핑에 따르면 ‘양측은 코로나19 상황이 안정돼 여건이 갖춰지는 대로 시진핑 주석의 방한을 조기에 성사시키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이에 반해 중국 외교부 발표에는 양제츠는 ‘중국은 양국 간 고위 교류를 증대시키기 위해 한국과 함께 노력할 준비가 돼 있다(Yang expressed China's readiness to work with the ROK to increase bilateral high-level exchanges)’라고 했고, 이에 대해 서 실장은 ‘한국은 중국과의 보다 긴밀한 고위 교류를 기대하고 있다(The ROK side looks forward to closer high-level exchanges with China)’라고 한 것으로 돼 있다. 시진핑 방한 시기에 대한 합의 이야기는 없으며 서 실장이 방한을 강하게 요청한 데 대해 양제츠는 원론적인 답변을 한 것으로 보인다. 12월 한국에서 열리는 한·중·일 정상회의에 관례에 따라 리커창이 참석 예정이므로 시진핑의 연내 방한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설사 우리 측의 발표대로 ‘합의’가 있었다하더라도 코로나 사태가 언제 끝날지 몰라 방한 시기를 대략 잡기도 어려운데 그런 합의를 과연 ‘합의’라고 할 수 있을까?
왜 이 시점에 양제츠가 한국에 온 것인지에 대해 양국 정부의 발표 내용만으로는 파악하기 어렵지만 중국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의 영문판(글로벌타임즈) 보도를 보면 어느 정도 짐작이 간다. 글로벌타임즈의 기사에는 ‘펜데믹 가운데 중-한 관계는 다른 나라들에 대해 모델로 작용할 수 있다’ ‘중국은 중국과 관련된 이슈에 대한 한국의 객관적 입장을 평가한다’ ‘한국은 미국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홍콩, 신장 및 코로나의 기원에 대해 객관적이고 중국과의 우호를 지키는 쪽을 선택했다’ 등 내용이 들어있다. 보도 내용이 사실이라면 현 정부의 초기에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한중 간 갈등이 발생했을 때 중국 측에 3불 원칙을 천명한 것을 생각나게 하는 대중 저자세라 하겠다.
일각에서는 중국의 ‘구애전략’을 잘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나 19세기 말 조선의 내정에 간섭하고 외교를 좌지우지했던 청나라에 대한 기억이 새롭게 떠오른다.
현 정부의 대 중국 정책의 기저에는 한국경제의 사활이 중국에 달려 있다는 의견과 경색된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열기 위해 중국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상황인식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중국 시장에 대한 한국 수출의 의존도가 매우 높은 것이 현실이나 단순히 중국이 이웃에 있는 큰 시장이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니고 우리가 대중 무역 흑자라는 단물에 취해 자초한 것은 아닐까?
미국의 더 이상 중국을 세계의 공장으로 놔두지 않겠다는 전략을 활용해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리의 수출과 해외투자 대상지역을 다변화해 중국의 비중을 낮춰 나가면 되는 것 아닐까?
그리고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과대평가하고 중국이 북한의 정책에 영향을 주기를 막연히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북미 정상회담이 2차례 열리는 동안 시진핑은 김정은을 세 차례나 초청했고 자신이 평양에 가기도 했는데, 이는 중국이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기보다는 중국이 배제된 채 북한이 미국과 ‘깜짝 딜’ 하는 것을 두려워한 결과는 아닐까?
노무현 정부 시절 6자 회담이 진행되던 때 모스크바에 들른 청와대 당국자에게 필자는 우리 정부가 자주 중국에 대해 사의를 표한다고 하는데 립 서비스인지 아니면 진정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지 물었는데 그 당국자가 대답 없이 멋쩍게 웃기만 한 것이 생각난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은 중국에게도 긴요한 것이다. 만일 남북한 사이에 전쟁이 재발한다면 한국은 물론 중국의 경제발전에도 치명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August 30, 2020 at 05:06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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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한마디] 양제츠 방한과 한-중 관계 - 천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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